skip to Main Content

“글로벌 제약 50곳 도장깨기…싱가포르의 Anti-Fragile”

박찬하 편집인의 “제약바이오, 사람이 전부다”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_랜선(LAN線) 인터뷰

 
릴레이 기획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K-제약바이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이 제약바이오 발전과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빼면 K-제약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글로벌 무대에 선 한국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땅을 벗어나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K-제약바이오의 든든한 자산이다.

 


 

릴레이 기획 인터뷰는 주로 추천에 의해 인터뷰이(interviewee)가 선정되지만, 김영미 박사는 특별했다. 그녀는 페이스북 등 SNS 채널에서 스스로 추천됐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듯하다. 수 년간 그녀의 사적, 공적 포스팅을 지켜보며 늘 궁금증이 있었다. 1차 인터뷰용 답변에서도 열정이 읽혔다. 그녀 삶의 여정이, 다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빼곡하고 자세했다. 밑줄을 치며 읽어 내려가는 동안 스친 단어는 ‘똑/순/이’였다. 똑순이는 그녀가 말한 Anti-Fragile의 컨트리 버전쯤 될까? 랜선이지만 김 박사와 인터뷰는 유쾌하고 거침없었다.

 

현재는 과거의 거울이잖아요? 살아보면 인과(因果) 없는 일이 별로 없듯. 그게 인연일 수도 있고. 김영미 박사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특히 그래요. 싱가포르와 K-바이오, 이 방향으로 살아왔다고 할까요?


“들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우선 신약개발에 어렴풋하게나마 관심을 가진 건 암투병하신 부모님 때문입니다. 그 때, 신약연구 개발에 기여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목표 같은 게 생겼으니까요. 화학 전공으로 대학을 갔고, 석사 때 실험실에서 남편을 만났고, 그 남편이 난양공대(新加坡南洋理工大学) 연구원으로 가면서 싱가포르와 인연을 맺었어요. 여기 와서 ‘한국 바이오텍의 동반자’역할을 해 보겠다는 개인적 목표가 생겼고요. 이런 목표가 기준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운명일까요?”

 

싱가포르 전에는 신약 R&D의 직접 플레이어였어요. 지금 하는 일의 키워드는 인큐베이팅 또는 네트워킹으로 볼 수 있는데, 아쉬움은 없나요?

“대학 4학년 때,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김철 교수님을 통해서 의약화학 수업을 들었는데, 그 때 ‘시스플라틴과 단백질 결합구조’를 보고 구조생물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졸업하고 연세대 생화학과 이원태 교수님 랩에서 석사를 했는데, 전공이 펩타이드 신약 및 단백질 3차원 구조결정학(Bio NMR)이었지요. 남편(신준 박사)도 이때 만났습니다. 석사 끝날 때 즈음 샘플 갖다 주러 가는 동기를 따라 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정재준 박사님을 뵙고 대전 KBSI 자기공명팀의 석사후 연구원이 됐고, 2년간 근무 후에 KBSI 바로 앞에 있는 카이스트(최병석 교수 실험실)로 자연스럽게 박사과정을 진학했어요.

이때까지 암투병 하시는 부모님 보면서 생긴 신약개발이라는 개인적 미션 대로 진로를 이어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R&D 결과물들을 적재적소에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전혀 아쉽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요. 다만, 제가 이 분야에 눈을 돌린 건 사람 만나는 실력으로 K-바이오 성장에 기여해보자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에요. 농반진반으로 글로벌 제약회사 50곳을 대상으로 ‘도장깨기’에 도전하겠다고 말하곤 해요. 그들에게 꼭 맞는 한국 파트너를 찾아 연결하겠다는 게 제 목표거든요. 세상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졌다고 부산 유락여중 담임이셨던 박경산 선생님께 배웠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쓸모가 있다는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경이로웠어요.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재미있죠?”

 

국어국문학 전공자입니다. 제가. 국어 전공자 입장에서 원자와 분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오히려 놀랍네요. (웃음) 싱가포르로 가면서부터 사람 만나는 실력, 네트워킹 분야에 종사하셨나요?

“바로는 아니에요. 처음에는 A*STAR 신약개발연구원인 ETC (Experimental Therapeutics Centre)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어요. 노바티스와 뎅기열 치료제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경험하기도 했고요. A*STAR의 BMRC(Biomedical Research Center)는 싱가포르의 생명공학 전략본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기술 상업화, 기술 중개에도 큰 역할을 해요. 제가 지금 하는 일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결정적인 건 A*STAR 건물에 함께 있던 보건산업진흥원 장경원 박사님, A*STAR ETPL(현재 A*ccelerate) 김신철 박사님 같은 분들을 만나면서 한국과 싱가포르의 바이오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꿈을 꾸게 됐어요. 이때가 2013년 무렵이에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서 노바티스 글리벡(Imatinib) 개발자(Global Head of oncology Research)이자 ETC, A*STAR의 CEO를 역임한 Alex Matter 박사와 함께.

씨엔알(C&R) 헬스케어글로벌(HG)에서 한-싱간 브릿지 역할을 하는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된 거네요.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그런 셈이지요. 씨엔알HG는 2017년 한국의 제약 및 바이오 스타트업 해외진출과 상업화 지원을 위해 싱가포르에 설립된 최초의 보건산업 전문 민간기업입니다. 제가 2018년 2월에 한국-싱가포르 헬스케어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매니저로 이곳에 입사했는데 첫 현지 직원이었지요. 입사 후부터 현재까지 15개의 한국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싱가포르와 동남아 지역에서의 전략적 네트워킹 업무를 지원했어요. 한국의 헬스케어 기술이 글로벌과 연결되면 더 많은 환자들의 건강개선과 생명을 구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껴요.”

2021년입니다. 올 해의 업무목표라고 할까요? 개인적 목표일 수도 있겠는데, 그런게 있나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제약회사 의뢰로 오픈이노베이션 대상을 한국에서 물색하고 있어요. 또 한국 의료기기 회사들을 위한 수출지원 업무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비즈니스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에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존중에서 일어난다고 봐요. 항체신약과 표적 세포의 결합 지점을 알아보는 촉매(Catalyst) 처럼 역할하는 것이 저의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경계인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사는 곳, 하시는 일 등 이런 것들이요. 신약개발의 직접 플레이어인 것도 아니고, 특정회사 또는 특정 프로젝트의 주체도 아니고. 연결의 고리 역할이거든요. 꼭 한국인 것도 아니고요. 마음의 갈등이 있을 것 같아요. 기자라는 직업이 그렇거든요.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 거기서 오는 회의가 있거든요.

“맞아요. 늘 경계에 있어요. 전공인 바이오 NMR만 해도 그래요. 생물학이라고, 물리학이라고, 화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컨버전스(convergence)된 학문이거든요. 삶도 한국이나 싱가포르에 완전히 속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해야 가능하지요. 기자님도 경계에 서 있는 일이라면 아실텐데, 경계인이 느끼는 감정적 회의가 물론 있지요. 하지만 제 일은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돕는 거 잖아요. 양심에 떳떳하고 퀄리티 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싱가포르 하면 김영미가 떠오르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서 저는 보람을 찾아요.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 한다면 성사되는 일이 있겠어요?”

 

싱가포르나 동남아 지역에 진출하려는 헬스케어 기업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 있을까요?

“미용상품이나 드라마 때문에 한국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에요. 상대에 대한 분석과 전략이 스스로 있어야 해요. 상대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기만 해서는 성사되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어필할 수 있도록 스스로 분명한 전략을 세워야 해요. 물을 떠 먹여줄 수는 없으니까요. 한국은 미국 중심이지만 싱가포르나 동남아는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에 우선해요. 그러니까 막연한 접근으론 안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해요.”

 

이제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마지막으로 들려주세요.

“싱가포르에서 좋은 친구이자 동반자인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둘째 아이는 특수학교에 다닙니다. 부모님과 아이, 가족의 건강은 자연스럽게 제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였어요.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삶을 살려고 해요. 전에는 전투하는 것 처럼 살았거든요. 따뜻한 가슴으로 누구나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큰 아이가 대학에 갈 때면 터전에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한국에 돌아가야한다 이런 생각은 없어요. 일과 삶에 경계를 두지 않아요 저는. 헬스케어에서 한국과 글로벌을 잇는 역할로 계속해서 기여한다, 이런 목표 하나만 갖고 있어요, 일적으로. 저는 어려울수록 강해지는 Anti-Fragile 입니다.”


 

Back To Top